디지털문서와 달리 기술보호 못 받아 .. 세밀한 가이드라인 시급

이경탁 2017. 9. 2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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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폐지장-제지' 유통 3단계
명확한 파기기준 없어 대충처리
파손정도 적을수록 높은값 받아
파쇄과정 건너뛰고 업체 넘겨져"
푼돈 예산으로 파쇄 애로" 토로
모호한 정부 정책·제도 재정비
제대로 된 현장 모니터링 필요
서울의 한 폐지장에 나뒹구는 개인정보가 담긴 종이문서들.

허술한 종이문서 개인정보 방치

IT가 사회와 산업 곳곳에 신경망처럼 도입되고, 금융기관이나 온라인몰에서 대규모 해킹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나며 '디지털보안'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다. 하지만, 종이문서 보안은 사각지대나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호한 정부 정책과 제도를 정비해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현황파악과 현장 모니터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민간 부문의 전자문서 활용률은 57.3% 수준이다. 전자문서 시장은 2015년 3조3864억원에서 2020년 4조9756억원으로 연평균 8%의 성장이 기대되는 유망 산업분야다. 그러나 종이문서 역시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여전히 중요한 정보기록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종이문서에 대한 관리와 파기는 조직 규모를 불문하고 비슷한 유통경로를 통하며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안전부가 제정해 지난 2011년부터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종이문서와 관련해 '개인정보를 파기할 때에는 복구 또는 재생되지 아니하도록 조치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파기방법 및 절차는 '기록물·인쇄물·서면·그 밖의 기록매체인 경우:파쇄 또는 소각'이라고 한 줄만 명시됐을 뿐이다. 규정이 이렇게 단순하게 돼 있는 가운데 '파쇄업체→폐지장→제지업체' 3단계 유통과정에서 파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과 공공기관들은 더 이상 보관이 힘든 종이문서들을 파쇄 전문업체에 맡긴다. 이 파쇄 업체들이 고객사로부터 납품받은 물량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지역의 고물업체 등이 운영하는 폐지수거장으로 넘기고, 이 업체들은 최종 처리 과정을 거쳐 재활용 종이가 필요한 제지업체에 판매한다.

일부 폐지 수거관리 업체는 입고파쇄가 이뤄지지 않은 종이문서 처리를 위해 파쇄기계 설비를 갖추고 현장파쇄를 하기도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도 종이의 파손 정도가 적을수록 제지회사로부터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 보니 파쇄과정을 건너뛰는 곳들이 비일비재하다. 종이문서 파기를 의뢰한 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업체에만 맡겨 처리 과정에 일절 관여를 하지 않는다.

폐지처리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생산해 내부 기밀이나 개인정보가 자세히 담긴 종이문서들이 일반 쓰레기와 다를 바 없이 처리되고 있다"며 "이는 문제가 있는 일부 현장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국내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람만 조금 불어도 주변으로 종이문서들이 날아다니고 외부인들이 이를 쉽게 가져갈 수 있는 등 최종적으로 제지회사까지 옮겨지기까지 유통과정 보안이 너무 허술하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사업에 사업권을 확보해 파쇄사업을 하는 군인공제회의 경우 감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대거 종이문서를 받은 뒤 파쇄를 제대로 하지 않고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업계 관계자들은 파쇄업체들이 시장에 난립하고 종이문서의 최대 수요처라 할 수 있는 공공기관들이 푼돈의 예산으로 감당 안 되는 물량을 맡기는 상황에서 파쇄를 철저히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일부 공공기관은 몇십 톤의 물량을 건네주면서 어차피 돈 주고 팔 수 있지 않냐면서 오히려 파쇄업체에 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며 "문서파기 관련 기준도 제대로 없다 보니 업체들이 최소한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파쇄는커녕 문서를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종이에 대한 공급과 수요는 가까운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이를 처리하는 시설과 장비에 대한 체계적인 조성기준 및 절차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개인정보보호포럼 위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당시 정보화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종이문서는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종이문서에 대한 보안 중요성도 제기돼 뒤늦게 법에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권 교수는 "온라인 정보들은 기술적 보호조치가 종이문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데, 종이문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 관리되고 있다"며 "종이문서도 결국 전자적 자료가 출력된 정보인 만큼 종이문서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세밀한 가이드라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경탁기자 kt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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